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시 25편)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
 ...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 ...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 ...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오늘 이른 시간에 잠이 깼다. 휴대폰 모닝콜 소리에 몇번이고 뒤척이다 마음먹은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 절망(?)의 연속이었던 날들이 벌써 며칠째인지 까마득하다.
그래서 이 새벽에 깨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한 것이다.
 
QT를 떼제 찬양과 함께 시작하고 싶었다. 노트북에서 찾아 찬양을 틀고 성경을 꺼내 시편을 펼쳤다.
23편을 읽고 나니 내 눈이 25편으로 옮겨졌다.
말씀을 따라 읽으면서 최근의 내 기도와 너무나 흡사하여 놀람과 감격에 잠시 취했다.
밖은 아직도 아침을 기다리고 있는데 허기를 느낀다.
갈망한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갈망한다.

by joyer | 2007/10/20 06:16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바울의 고뇌와 탄식

(롬7:22-25)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노래의 가사처럼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어서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서 번민하는 바울의 모습이 마치 유리처럼 나를 투영하고 있는 듯 하여 가슴이 저리다.
어제 저녁 아내에게 신경질 냈던 일, 육신의 피로를 다스리지 못한 나태함으로 새벽을 놓친 오늘, 마음 속으로는 무수히 많은 결심 속에도 되풀이되는 후회, ...
바울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마음과 육신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바로 현재의 나이다.
오늘 내 영혼의 안식처인 예수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2년만이다.
삶의 중요한 때마다 새 힘과 용기를 얻었던 곳이다.
두 달여간의 번민의 시간들을 다시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살피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by joyer | 2007/09/18 09:41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一生一死

(롬 6:1-11)
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죽음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나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으므로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다만 죄성만 남아 있을 뿐.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태어났으며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가 살아계신다.
그럼에도 삶에 무기력과 절망을 느낀다는 것은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므로 이는 곧 불신앙이다.
현실을 바라보면 절망감과 실패감으로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내 안의 주님을 바라보면 희망이요 소망이다.
주님, 오늘 저에게 주어진 하루를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희망으로 가득한 날로 살게 하소서.

by joyer | 2007/09/15 06:58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롬 5:12-21)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16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한 사람의 범죄의 결과와 같지 않습니다. 한 범죄에서는 심판이 뒤따라와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마는, 많은 범죄에서는 은혜가 뒤따라와서 무죄 선언이 내려졌습니다.
17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끼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21    그것은, 죄가 죽음으로 사람을 지배한 것과 같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사람을 지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담으로 범죄로 시작된 죄가 하나님의 선물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졌다.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 본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 더 이상 죽음이 왕노릇하지 못하도록 나에게 주신 은혜이다.
죽음은 절망이요 인생의 끝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요 희망이다.
주님,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소서.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님으로 말미암은 용기와 희망을 주소서.
죄로 인해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저를 지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저를 지배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제 인생의 선장이신 주님께서 저의 진로를 인도하여 주소서. 

by joyer | 2007/09/14 06:54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나의 나됨은

(롬 5:1-11)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4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7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나됨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을 간절히 구할만큼 역경 속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어느날 문득 내 안에 하나님이 자리하고 계심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지 않는가보다.
겉으로 보기에 오히려 평안해 보이는 듯. 이것이 진짜 내 믿음일까? 아니면 위장된 평화일까?
오늘 아침은 유난히 양어깨가 피곤하다. 아마도 정신적인 피로때문이겠지.
 
바울은 지금의 자리가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분으로 인해 얻어진 의로 말미암아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환난은 인내력을,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다고 말한다.
이 희망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으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 것이다.
 
요즘은 인내의 단계임이 분명하다. 연장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끝나는 경기임에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해 나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현실을 보면 자신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과 절망과 두려움과 근심이지만, 아침마다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는 희망과 소망의 메세지를 계속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희망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by joyer | 2007/09/13 06:52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는가

(롬 3:27)
 그렇다면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의롭게 됩니까? 행위의 법으로 됩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으로 됩니다.
 
나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좀 더 민감해져야 하지 않을까?
때때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지 않고, 농담투로 가볍게 입을 여는 모습 속에서 아직도 겸손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그동안의 삶에 대한 반성과 회개가 너무도 부족했다.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임에도 감사치 않고, 내면에는 자랑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하루도 겸손의 자리에 머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 4:4-7)

by joyer | 2007/09/10 06:49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

(롬 3:1-8)
1    그러면 유대 사람의 특권은 무엇이며, 할례의 이로움은 무엇입니까?
2    모든 면에서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3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 얼마가 신실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납니까? 그들이 신실하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없어지겠습니까?
4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지만,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성경에 기록한 바 "주님께서는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인정을 받으시고 재판을 받으실 때에 주님께서 이기시려는 것입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5    그런데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말해 본 것입니다.)
6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7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의 거짓됨 때문에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면, 왜 나도 역시 여전히 죄인으로 판정을 받습니까?"
8    더욱이 "좋은 일이 생기게 하기 위하여, 악한 일을 하자"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고 비방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유대 사람의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이다. 이 특권은 남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특권을 함부로 사용하면 남용이 된다. 올바로 사용하도록 책임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런 특권을 남용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함이 없어지겠는가?
반대로 특권을 가진자가 악을 행할수록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욱 선명해지는가?
맥스 루카도는 그의 책 '하나님의 음성 우리의 선택'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분 자녀들의 신실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실하지 않은 때에도 하나님은 늘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부족하고 연약한 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지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by joyer | 2007/09/08 06:46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외면적 유대인과 내면적 유대인

(롬 2:25-29)
25    율법을 지키면 할례를 받은 것이 유익하지만, 율법을 어기면 그대가 받은 할례는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26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면, 그 사람은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할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27    그리고 본래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이, 율법의 조문을 가지고 있고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율법을 범하는 사람인 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28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29    오히려 속 사람으로 유대 사람인 이가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로 사람의 믿음을 판단할 수는 없다. 행동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으로 얻어지는 결과이어야지, 그 자체로 삶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 교회에 정기으로 출석하고, 봉사하고, 성경공부하고 ...  이런 것으로 자신이 마치 제대로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그 내면의 모습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중심 곧 내면을 보시는 분이시다. 그 행위의 동기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시다.
혹시 나에게도 그런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는 모습은 없는지?
남들보다 좋은 훈련을 받았고, 조금 더 많은 성경적 지식, 교인들로부터 칭찬 받는 것 등으로 내면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에서야 다시금 내 안의 교만을 깨닫는다. 겸손의 영성을 하나님은 오늘도 요구하고 계신다.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슨 일에든지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가 하나님의 관점이다.
오늘도 주님께서 나를 겸손의 영성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by joyer | 2007/09/07 07:41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는가

(롬 2:17-24)
17    그런데, 그대가 유대 사람이라고 자처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대는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장 선한 일을 분간할 줄 알며,
19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하며,
20    지식과 진리가 율법에 구체화된 모습으로 들어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스승이요 어린 아이의 교사로 확신한다고 합시다.
21    그렇다면 그대는 남은 가르치면서도,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도, 왜 도둑질을 합니까?
22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왜 간음을 합니까? 우상을 미워하면서도, 왜 신전의 물건을 훔칩니까?
23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왜 율법을 어겨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24    성경에 기록한 바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한 것과 같습니다.
 
나의 교만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저런 훈련과 과정을 거쳐 나름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뜻을 알아 선한 일에 분별력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면서, 타인에게 교사이면서도 자신은 가르치지 않고, 성경적 삶을 말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던 나의 교만...
성경은 이런 나 자신에게 '너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 받는다'라고 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또 한 번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에게 하루를 허락하셨는데 겸손과 순종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저의 삶은 주님의 것입니다.

by joyer | 2007/09/06 07:40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롬 2:1-11)
1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내린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3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4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그대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심과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5   그대는 완고하여 회개할 마음이 없으니,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나타날 진노의 날에 자기가 받을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 혀가 거칠었구나. 남을 쉽게 비방하고 심판했던 모습. 결국 그것은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을 비판할 때 나는 의인인 듯 나만은 깨끗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의 인자와 용서와 인내를 무시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의 인자는 회개케하시는 것이다.
하나는 내 자신이 행한 비판에 대해,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기만했던 죄에 대해서.
 
6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7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8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내가 행한대로 되갚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인내하며 선한 일로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오늘 내가 해야 할 선한 일은 무엇일까?
첫 째는 혀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
주님, 저에게 회개의 영을 허락하소서.

by joyer | 2007/09/05 07:34 | 살며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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